2020. 6. 10. 17:03ㆍ자기계발서적
원래부터 한글로 쓰인 글처럼 매우 매끄러운 번역을 하시는 류시화 작가님의 번역서 <인생 수업>입니다.
<인생 수업>의 공동저자 중 한 사람인 엘리자베스 퀴블러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열아홉 살에 폴란드 마이데넥 유대인 수용소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며 인생을 바칠 소명을 발견합니다.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사람들이 지옥 같은 수용소 벽에 수없이 그려 놓은, 환생을 상징하는 나비들을 보고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취리히 대학에서 정신의학을 공부하고, 이후 뉴욕, 콜로라도, 시카고 등의 병원에서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정신과 진료와 상담을 맡는네, 의료진들이 환자의 심박수, 심전도, 폐기능 등에만 관심을 가질 뿐 환자를 한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것에 충격을 받습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는 앞장서서 의사와 간호사, 의대생들이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마음속 이야기를 들어주는 세미나를 열고, 세계 최초로 호스피스 운동을 의료계에 불러일으킵니다. 그녀는 <인생 수업> 이 책을 끝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실 호스피스 병동에 있지 않은 우리도 내일이라는 시간이 보장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연 재해, 불의의 사고 등으로 누구나 삶과 죽음의 경계에 갑작스럽게 서게 될 수도 있고 장애를 가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인생 수업>은 우리는 지구에서 유한한 삶을 살고 있고, 떠나야 하는 시간이 언제 올 것인지 알지 못하므로 우리가 정말 해야 할 일을 상기시켜줍니다.
가끔씩은 억누르고 있던 충동에 몸을 맡기고 이상하거나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아야 합니다. 당신이 진정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또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면 무엇을 할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결과에 신경 쓰지 않고 원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당신이 누구인지 또는 적어도 당신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 줄 것입니다.
자신을 화나게 하는 문제에 대해 상대방과 이야기하는 것은 전혀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나 상대방으로부터 어떤 변화를 기대하며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생각을 공유하고 진실을 말해야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이 당신의 사유지를 가로질러 지나다닌다면, 적어도 1년에 한번은 그 땅이 당신의 것임을 알리는 푯말을 세워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푯말을 세우지 않으면 몇 년 지나지 않아 그 땅은 공유지가 되어 버릴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그 사유지와 같습니다. 가끔씩이라도 우리는 "아뇨." 또는 "그건 나한테 상처 주는 일이야.", "네가 날 마음대로 할 수는 없어."라는 등의 말을 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경계선을 그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의도적이든 아니든 우리를 통제하려는 사람들에게 힘을 넘겨주게 될 것입니다. 힘을 되찾는 일은 바로 자신의 책임입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신경 쓰면 정작 자신의 힘을 잃어버립니다. 이 힘을 회복하고자 한다면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삶은 바로 당신 자신의 삶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가장 중요합니다. 당신에게는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힘은 없지만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지배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당신은 그들의 생각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축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특별한 경우에만 쓰기 위해 아껴 두지 말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기 자신을 축하 하십시오. 우리는 좋지 않은 일이 생길 때는 그것에 지나치게 시간을 할애합니다. 오히려 좋은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합니다.
우리들 중에는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일 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그들은 바꾸고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만히 내버려 둬도 세상은 아무 문제없이 굴러간다는 이치를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과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생각의 본질은 같습니다. 곧 상황이 잘못되어 간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인내심의 열쇠는 모든 것이 잘 되리라는 믿음, 인간이 모르는 큰 계획이 존재한다는 신뢰를 키우는 데 있습니다.
죽음에서든 삶에서든 이것은 진실입니다. 당신이 준비가 되기 전까지는 곧 모든 일이 나름의 질서에 따라 진행 된다는 사실을 믿고 이해하기 전까지는 당신은 삶에서 어떤 것도 제대로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철학의 관점에서 볼 때 인내심은 규칙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근육과 같습니다. 날마다 훈련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전자레인지로 음식을 데우는데 걸리는 1, 2분 같은 작고 일상적인 상황에서 그 근육을 사용하지 않으면 삶의 더 큰 도전들에서 우리를 지탱해줄 튼튼한 근육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항상 치유 중이라는 신뢰감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상황을 바꾸려는 경향이 있으므로 모든 일이 정해진 순리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스스로를 안심시켜야 합니다.
행복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가 아니라 일어난 일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행복은 일어난 일을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고, 인식하고, 그 전체를 어떤 마음 상태로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리고 일어난 일을 어떻게 인식하는가는 어느 쪽으로 마음을 기울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당신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최악만을 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최선을 보기 위해 노력하는 편입니까? 어떤 것에 관심을 돌리고 마음을 쏟으면 그것은 점점 자라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최선이 나 최악이 우리의 해석 안에서 그리고 자신 안에서 자라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과거를 나쁜 조명 속에 비춰보면서 목적이나 의미가 없는 것으로 바라본다면 우리가 심는 씨앗이 미래에도 비슷한 모습으로 자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과거를 무거운 짐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과거는 우리 자신의 일부이며 그것은 우리를 계속 내리누르고 행복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합니다. 행복은 우리의 자연스러운 마음 상태이지만 우리는 행복해지는 법을 잊었습니다. 일이 어떤 식으로 일어나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갇혀 버렸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행복한 순간을 경험하는 데서 옵니다. 그리고 행복은 느낄수록 더 많아집니다. 비교는 불행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우리 자신과 타인을 비교한다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적은 노력을 들여 재빨리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며 절망의 나락으로 내려갑니다. 이런 자기 파괴적인 비교는 반드시 다른 사람이 대상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자신을 과거나 미래와 비교하는 것도 마찬가지 결과를 낳습니다. 오늘 자신의 모습을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과거의 모습과 비교하거나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아무 문제 없다고 여기 있는 데서 행복은 찾아옵니다.
<인생 수업>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나에게 얼마나 더 많은 돈이 생긴다면 영원히 행복함을 느낄 수 있을까요? 아마도 내가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는 공허한 마음을 채워줄 돈의 액수는 무제한일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행복할 수 없겠죠. 결코 이길 수 없는 필패의 게임, "남과 비교하기"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할 때 행복은 항상 나와 함께 있을 것입니다.
"누구나 죽음을 마주하면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 배움은 삶을 더 의미 있게 해줍니다. 그 배움을 얻기 위해 꼭 삶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할까요?
지금 이 순간 그 배움을 얻을 수는 없을까요?
삶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배움들은 무엇일까요?
그것들은 두려움, 자기 비난, 화, 용서에 대한 배움입니다. 사랑과 관계에 대한 배움입니다.
놀이와 행복에 대한 배움입니다. "
-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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