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22. 17:54ㆍ자기계발서적
책을 한 권씩 리뷰해보기 위해 책장을 훑어보다가 한동일 교수님의 <라틴어 수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한참 심적으로 의지할 곳이 없고, 나의 모든 불행의 결론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 증거라고까지 생각하던 3년 전, 우연히 읽은 책입니다. 신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신을 엄청나게 원망하던 시절, 싱크로니시티(우연처럼 보이는 필연)처럼 <라틴어 수업>을 집어 들게 됩니다. 읽으면서 내내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한동일 교수님이 잔잔하게 풀어놓은 문장들이 왜인지 모르게 저를 위로해 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와 같이 위로받은 분들이 많았는지 이 책은 100쇄를 찍었습니다.
한동일 교수님은 한국인 최초, 동아시아 최초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Rota Romana) 변호사이자 가톨릭 사제입니다. 이 책의 타이틀은 <라틴어 수업>이지만, 라틴어의 문법이나 회화만을 가르치는 책이 아니며, 한동일 교수님이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서강대학교에서 진행했던 라틴어 강의를 책으로 옮겼습니다. 한동일 교수님은 어린 시절 가난했으며 그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공부에 몰두했습니다. 고등학교 재학 당시 만났던 신부님의 영향으로 천주교 신자가 되었으며, 이후 뜻하지 않게 사제의 길로 들어섭니다. 2001년 로마로 유학하여 교황청립 라테라노 대학교에서 교회법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한국과 로마를 오가며 이탈리아 법무법인에서 일했고 서강대학교에서 라틴어 강의를 했는데, 그 강의는 입소문을 타고 서강대 학생들뿐만 아니라 타 대학 학생들과 일반인들까지 청강하는 명강의 중 하나로 선정되었습니다.
단순한 라틴어 수업이 아닌 라틴어의 체계, 라틴어에서 파생한 유럽의 언어들을 시작으로 그리스 로마 시대의 문화, 사회 제도, 법, 종교 등을 포함해 현대 이탈리아에 대한 이야기까지 종합 인문 교양 수업에 가까웠기 때문에 인기가 많았습니다. 교수님의 유학 시절 경험과 공부의 어려움, 장점과 단점에 대한 생각, 관계의 문제 등 우리가 한번쯤 생각해 봐도 좋은 인생의 여러 가지 모습과 그 성찰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저도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항상 목차를 보고 책을 선택할지 결정을 합니다.
목차만 읽어도 이 책의 성격에 대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왜 무엇을 위해서 공부하는 걸까요? 요즘 들어서는 제가 왜 공부를 하는지, 왜 더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예전에는 그저 내 개인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것 외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라틴어 수업>에서는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 철학이 빈곤해서 자신이 한 공부를 사회와 나눌 줄 모르며, 자기 호주머니를 불리는 것에는 집중하지만 사회 구조적으로 착취당하는 사람, 가난한 사람은 계속 가난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 어려운 사람들의 신음소리에 무신경하다고 일침합니다. 엄청난 시간과 노력으로 공부를 한 머리만 있고 따뜻한 가슴이 없기 때문에 결국 그 공부가 무기가 아닌 흉기가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나의 행복에만 집중하기보다, 더 많은 사람과 더 넓은 세상의 행복을 위해 자기 능력을 나누겠다는 한 차원 높은 가치 추구를 말씀하시는데, 저부터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생채기 가득했던 제 마음에 아주 큰 위로가 되었던 부분을 소개합니다.
우리는 보통 나와 같은 또래의 사람이 무언가 큰 성취를 이루었을 때, 나는 그동안 뭐했나 싶은 생각을 하거나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는 생각에 좌절감과 열등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절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나마저 자기 자신을 힘들게 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내 나이 또래의 사람이 무언가를 이뤘지만 나는 아직 눈에 띄게 이룬 것이 없다면, 그와 내가 걷는 걸음이 다르기 때문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나와 그가 가는 길이 다를 뿐이죠.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저마다의 걸음걸이가 있고 저마다의 날갯짓이 있어요. 나는 내 길을 가야 하고 이때 중요한 것은 '어제의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은 정확히 모르는 내 걸음의 속도와 몸짓을 파악해나가는 겁니다.
필패의 싸움, 나를 채찍질하는 것과 같은 타인과 비교하기는 제가 반드시 버려야 하는 부정적인 생각 중 하나입니다. 많이 떨쳐버렸다 생각하지만, 한 번씩 습관처럼 올라오는 이런 찰나의 생각이 하루를 힘든 시간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타인을 이겨 보이는 것이 아니라, 늘 어제보다 오늘 내가 조금 더 발전하는 사람이기를 바랍니다.
절망에 지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을 때면 신은 제게 희망이라는 사탕을 주었습니다. 그 사탕이 달고 맛있어 절망을 잊고 한참 달려가다 보면 어느덧 더 큰 절망이 제게 다가왔어요. 거기에서 벗어나려 애쓰고 있노라면 신은 운명처럼 더 큰 희망을 품게 했습니다. 죽지 않고 견딘 것에 대한 보상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삶이 다시 지리멸렬한 일상으로 가라앉을 때 지쳐버린 저는 결국 신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는 신을 보채기 시작했습니다. 이만큼이나 노력했으니 이것을 해달라고 나름대로 간절함을 담아 기도합니다. 하지만 결과는 제 바람과는 영 딴판으로 나오고 저는 끝내 이렇게 내뱉고야 맙니다. "신이 나를 배신했어!" "신이 있기는 해?"
아뇨. 신은 저를 배신하지 않았어요. 그저 그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달랐을 뿐입니다.
신은 언제나 인간의 계획보다 더 오랜 시간을 두고 미래를 봅니다. 그러니 인간으로서 신의 시간과 뜻을 헤아린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일일 겁니다.
이 부분을 읽을 때, 그 당시 저의 생각과 너무도 유사하여 '아,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는구나.' 하고 오히려 마음이 놓였던 기억이 납니다. 신이 계획한 시간과 제가 계획한 시간이 다를 뿐이라는 것을 지금은 굳게 믿고 있습니다.
찾아보니, 교수님은 지난 5월 EBS 명강에도 출연하셔서 강의를 하셨습니다. 혹시 힘든 일을 겪으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EBS 강의나 책 <라틴어 수업>을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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